색의 혁명: 수채색 사진에서 오토크롬, 코다크롬까지

흑백사진이 사진의 첫 세기를 지배한 것은 사람들이 색에 무관심했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의 시각을 따라잡기까지 화학, 광학, 산업, 시각문화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왜 색은 혁명이었나 세계는 한 번도 흑백이었던 적이 없다. 다만 초기 사진이 세계를 그렇게 보이게 만들었다. 다게레오타입에서 칼로타입으로, 습판 콜로디온에서 젤라틴 건판으로 이어지는 19세기 사진은 놀라운 성취를 이루었다. 세부 묘사, 복제 가능성, 휴대성, 기록으로서의 권위가 모두 발전했다. 그러나 사진에는 지각의 가장 기본적인 사실 하나가 빠져 있었다. 풀, 피부, 옷, 하늘, 꽃, 깃발, 음식, 페인트, 군복, 도시의 간판은 모두 회색조로 번역되었다. 이 부재는 사진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만들었다. 흑백 이미지는 진지하고, 시대를 초월하며, 증거적이고, 기념비적인 느낌을 줄 수 있었다. 세계를 빛과 그림자, 형태와 질감으로 추상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색은 실제 경험에 속해 있었다. 색은 온도, 맛, 유행, 계절, 국적, 상업, 계급, 기억을 담고 있었다. 따라서 컬러 사진은 사진 기술만 바꾼 것이 아니다. 사진이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를 바꾸었다. 사진은 현실을 번역한 이미지에서 현실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이미지로 이동했다. 수채색: 컬러 사진 이전의 색 사진에 색이 없다는 문제에 대한 첫 실질적 해결책은 화학이 아니라 손작업이었다. 사진가와 스튜디오 작업자들은 사진 위에 직접 색을 더했다. 손채색은 사진의 탄생 직후부터 등장했다. 작업자들은 수채화 물감, 유화 물감, 아닐린 염료, 분말 안료, 착색 바니시 등을 다게레오타입, 앰브로타입, 카르트 드 비지트, 캐비닛 카드, 종이 인화지 위에 올렸다. 피부에는 따뜻한 혈색을 더하고, 장신구에는 금빛을 넣고, 드레스와 군복, 뺨, 입술, 꽃에는 선택적으로 색을 칠했다. 이 작업에는 정밀함과 절제가 필요했다. 많은 손채색 작업자는 여성이었다. 스튜디오에서 섬세한 마감 노동을 맡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종 이미지의 인상을 크게 바꾸는 작업이었음에도 사진가의 저자성보다 부차적인 일로 취급되기 쉬웠다. 잘 채색된 사진은 은근하고 설득력 있었다. 반대로 빠르게 대량 생산된 채색 사진은 연극적이거나 과장되어 보이기도 했다. 손채색은 중요한 사실을 보여준다. 색에 대한 욕망은 컬러 사진을 기다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사진이 색이 가진 사회적, 감정적 정보를 담기를 원했다. 초상에서 색은 생기를 돌려주었다. 풍경에서 색은 계절을 돌려주었다. 여행 이미지에서 색은 19세기 관객이 먼 장소에서 기대한 이국성을 돌려주었다. 하지만 손채색은 타협이었다. 그것은 색을 기록하지 않았다. 나중에 해석해 덧붙였을 뿐이다. 컬러 사진의 꿈은 색을 자동화하는 꿈이었다. 색의 물리학: 맥스웰의 삼색 원리 컬러 사진이 실용화되기 전에 먼저 색 재현 이론이 필요했다. 1861년 스코틀랜드 물리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은 삼색 분리 원리를 이용해 최초의 투사식 컬러 사진을 시연했다. 사진가 토머스 서튼은 타탄 리본을 빨강, 초록, 파랑 필터를 통해 세 번 촬영했다. 맥스웰은 이 세 장의 흑백 분리 이미지를 각각 대응하는 색 필터를 통해 한 화면에 겹쳐 투사했다. 결과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역사적으로 결정적이었다. 색을 세 개의 기록으로 분석하고, 빛으로 다시 결합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산 혼합의 원리다. 빨강, 초록, 파랑 빛을 서로 다른 비율로 결합하면 넓은 범위의 가시 색을 재
ASTRANTIS 홈으로